구시가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갔다. 구시가지 골목길에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 30분을 기다려 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취향에 관계없이 피카소는 대단한 예술가인 것이었다. 어릴 때의 작품들조차 포스가 흘러나온다. 말년의 작품은... 이해 불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패러디한 그림들 앞에선 웃음이 터져 나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샀다. 람블라스 거리와 구시가 사이를 오가며 바닷가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하는데 곁다리로 시킨 맥주가 1000cc. 나중에 알딸딸한 상태로 걸어다녔다. 저녁에 공연한다는 플라멩코 기타 연주회 찌라시를 받았는데 시간 관계상 패스. 분수쇼에 밀렸다. 결국 플라멩코 기타는 헝가리에서 들었다는... Port Vell에 있는 수족관도 역시 통과. 바르셀로나에서는 볼 것도 할 것도 많구나.
이제 몬주익 언덕으로 향한다. 케이블카로 경사진 비탈을 오르내린다. 전철과 연결되어 따로 요금을 받지 않는다. 호앙 미로 미술관에 들어간다. 역시나 미술 문외한, 처음 보는 미로의 작품들. 몇몇 어두운 작품들과 대부분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초현실 작품들, 미술관도 맘에 들고 작품들도 맘에 쏙 든다.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음료수를 마시고... MNAC 입장 시간에 늦어버렸다.
하지만 볼거리가 아직 남았다. 거리에 걸려 있던 플랭카드로 확인한 'Forgotten Empire'를 보러 Caixa Forum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카탈루냐 은행에서 운영하는 전시장, 우리가 갔을 때는 세가지의 전시회가 열려 있었다. 모두 무료, 내용도 알차다. 제대로 된 기업의 사회환원이란 이런 것이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런 것 안배우나. 'Forgotten Empire'전은 페르시아 유물전인데 전 유럽에서 내노라하는 유물들을 모아놓은 모양새, 황금 똥칠의 진수를 보여준다. 잘 만들어진 페르시아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당시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아 세상을 호령했던 거대한 제국이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알려진 것은 많지 않은 말그대로 잊혀진 제국의 영화를 약간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전시. 다른 하나는 Diane Arbus의 사진전. 기괴한 비정상적인 삶들을 담은 사진들인데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지만 무언가 아련한 슬픔이 느껴진다. 둘 다 무료라기엔 너무 잘 기획된 최상의 전시회였다. 다시 한번 Caixa Catalyuna에 감사. 해가 지기 시작하고 분수대 앞 계단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한 번 보여주는데 16억이 든다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공짜 쇼, 바르셀로나 분수 쇼! 정말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둘이서 꼬옥 손잡고 머리 맞대고 감상. 마지막 '바르셀로나...' 외치는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 한방울 찔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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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안먹어서 전날 갔던 tapas bar에 들러 곱창전골과 그외 안주에 와인, 열한시 되어서야 숙소에서 짐 빼서 공항으로. 민박집 주인 아줌마 인터넷에 글 잘 써달란다. 뭘, 없어보인다고 무시당한 것과 호랑이같은 친구 아버지 댁에서 눈치보며 자야하는 느낌으로 지낸 거, 아님 빨래해주는 날엔 아무 얘기 없다 다음날 '어머 어제가 빨래하는 날인데'하며 손수 빨래도 못하게 막은 것? 절대 잊지 않겠다, 만남 민박. 끝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팔레르모의 기억을 살려 편안하고 안전한 공항 노숙을 기대했는데, 여기는 모든 의자에 칸막이가 있어 눕질 못한다. 춥기까지 하다. 힘들게 잠을 청하는데 우리 앞의 백인 아가씨, 침낭에 비닐깔개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으로 편하게 누워 잔다. 우린 아직 멀었구나... 20세기 초의 세계 도시, 마름모 형태의 계획된 아름다움을 가진 걷기에 자전거 타기에 편안한 도시, 가우디와 피카소와 미로의 도시. 우리는 너무 짧은 시간을 보고 즐겼구나. 참으로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안달루시아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