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s/유럽, 2006

우연의 음악, Cesky Krumlov, 2006/05/21-23

피아*졸라 2008. 1. 4. 00:37
 여행을 계속하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덜 영향을 받은 나만의 best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곳이 예상치 않았던 '흙속의 진주'였음을 확인할 때 그 기쁨은 배가 될수밖에 없겠지. 대부분의 경우 그런 장소는 특별한 개인적 체험이 동반되는 상황이었던 듯 하다. 우리 부부가 여행한 작년 유럽 여행에서 실망했던 곳이 오히려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중에서도 빛나는 곳이 몇 있다. 아마 이곳이 우리가 즐긴 최대한의 즐거움이었던 듯 하다.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작은 도시, Cesky Krumlov. 90년 전 에곤 쉴레가 이곳에서 생활하다 미성년자에 음란한 행위를 했다하여 기소됐을 때와 차이가 없는, 시간을 살짝 비켜간 곳. 도미토리이지만 이층침대가 아닌 깔끔한 싱글 침대가 놓인 숙소를 보며 기분좋아하다가 밖에 나와 걷는 거리,중심을 흐르는 작은 하천을 바라보며 햇살을 몸에 인식시키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길을 거닐다가 어딘가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뭘까, 문앞에서 창문으로 들여다보려 했는데 갑자기 음악이 멎는다. 잠시후 문이 열리더니 들어오라는 인사말. 자그마한 카페겸 술집. 그 안에서 젋은 연주자들이 즉흥연주를 한다. 문열어준 이는 그 연주자 중의 한 명. 한곡이 끝나고 잠시 의견을 나누는 시간 외에는 계속 연주를 한다. 클래식과 그네들 전통음악을 즉흥연주로, 네시간 가까이, 바로 우리 옆에서. 대부분이 십대란다. 근처 도시의 음악 학교에 다닌단다. 우리들은 행운이라고. 정말 대단한 공연을, 흔치 않게 보는 거란다. 옆에 앉아있던 뉴욕에서 친구가 와서 데려왔다는, 이곳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한다는 미국인 아가씨가 말한다. 저 여자아이말야, 이제 열여섯이야. 야네스키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소녀, 온갖 악기를 다 연주한다.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거구나. 음악에 취해, 술에 취해 최고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0123456789101112
 다음 날은 느긋하게 일어난다. 약간의 숙취. 하지만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청명하며 마을은 평화롭다. 느긋하니 목적없이 걸어다녀본다. 중앙 광장에 갔다가, 성 위쪽으로 올라가 보고. 오후에는 뒷산에 올라가 체스키 크룸로프 전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려온다. 자그마한 도시, 간 곳을 보고 또 볼 수 밖에 없지만 다시 걷는 그 길도 즐겁다. 행복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고작 이박을 했을 뿐이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순간이었다. 길을 떠나는 아쉬움의 순간, 이런 대화를 나눴던 듯 하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
 사족, 여기에서 태국산 김치라면을 발견. 숙소에서 끓여 먹었다. 두 번이나. 맛은 그럭저럭... 숙소에 'Labyrinth' DVD가 있어 술먹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다 보고 잤다. 오랜만에 봐도 재미있는 영화. 사실 체코에 머무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맥주를 마시는, 심지어는 비엔나 이동하는 기차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