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닉은 여전히 눈부셨다, Dubrovnik, Croatia. 06/06/03,04
스플리트에서 아침에 버스로 출발, 세시간만에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중간에 보스니아 영토에 속한 작은 휴게소에 잠시 쉬어간다. 예전엔 그곳의 가격이 굉장히 싸다 했지만 우리가 산 물건들 -맥주와 통조림-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밖에서 굽고 있던 돼지 바비큐가 더 끌렸으나 언제 출발할 지 모르는 상황에는 그림의 떡.
버스 터미널에 내리니 많은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반긴다. 자기 집에 머물라고 호객하는데, 우리는 스플리트 민박 할머니의 친구를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다. 미리 전화까지 해놓겠다 했는데. 기다리다 못해 투숙객을 못잡은 할머니를 따라간다. 버스정류장 바로 옆, 구시가 다니기는 불편하겠지만, 바로 앞에 큰 마트가 있어서 좋겠다 싶었지만, 음식을 못해먹는단다. 할머니는 여동생과 단둘이 사신다는데,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고. 동생 할머니는 며칠 전 고양이가 집을 나선 후 돌아오지 않는다고 차에 치였을 거라고 울먹울먹, 여기는 슬픔이 깔린 눈부신 두브로브니크.
늘 그렇듯 마트에서 맥주와 과일 -이번에는 딸기- 사놓고, 딸기는 할머니들과 나눠 먹고, 밖에 나와 추천해준 식당에서 간단히 그저그런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구시가로. 구시가는 말그대로 성채. 현재는 해자도 걸어다닐 수 있게 정리되었지만,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문을 지나면 오백여년 전 만들어졌다는 오노프리오 분수를 지나쳐 성 블라이제 성당에 이르는 너른 돌길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반들거리는 돌바닥 위를 거니는 수많은 사람들. 전쟁은 과거 일로 잊혀졌나 했는데 구시가 벽의 상흔과 남편과 자식 잃은 할머니들의 한숨으로 잠깐씩 드러난다. 잠시 지나치는 여행자가 그 깊이를 어찌 알겠냐만.
Blaise 성당에 들어가고, 성당 옆 Sponza 궁전에서 전쟁 추모전을 보고 -전쟁 기간중 사망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다- 선착장과 등대를 구경하고, 아드리아 해를 감상하고 다시 성 내부로 들어와 미로처럼퍼져 있는 골목을 오르내리며 마당이라도 구경할까 흘끗거리다가, 아름답게 지는 해를 맞이하고는... 유럽 어디에나 있는 아이리쉬 펍에서 기네스에 간단한 식사.
다음 날은 구시가 바로 앞에 위치한 Lokrum 섬으로 향한다. 누드 비치가 있고 소나무 절벽이 있고, 공작새들이 우아하게 노니는 연못이 있고 식물원과 수도원 유적이 있는 작은 섬.
누드 비치에는 배나온 아저씨만 발가벗고 우리같은 관광객은 입구에서 흘끔 흘끔. 우린 인적없는 소나무 절벽에 자리 깔아놓고 간식을 먹고 사람을 무서워 않는 공작새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식물원을 거닐자니 폭우가 쏟아져서 수도원에 갇히고, 다행히 식당이 있어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몸이 젖는 것을 각오하고 선착장에 갔더니 바로 앞인데도 파도 때문에 배가 운행을 안하는 슬픈 상황에...
기다려서 다시 구시가로 돌아가 바닥 촉촉한 구시가 골목을 거닐고 -아마 일주일 머물러도 매일 지겹지 않게 거닐었겠다- Pile gate로 나와 왼편으로 내려가니 작은 선착장, 예쁜 고양이들이 평온하게 고양이를 사랑하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고양이들의 천국, 차에 치이지 않는다면 완벽하겠지만. 바깥의 전망탑은 아쉽게도 개장시간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소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한참 구시가를 들여다 본다. 황금색에 젖어들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환전해놓은 돈이 얼마 안남아서 구시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식당에서 정말 조심스럽게 저녁식사 주문. 다행히 최고의 맛이었고 팁을 충분히 주지 못해 아쉬워했다. 이박으로 마무리지어야 하는 것을 더 아쉬워했고.